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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AI Insight · 2024.09

대한민국 소버린 AI, 빅테크 아닌 스타트업으로 승부!

거대언어모델(LLM)은 현재 인공지능 혁명의 중심에 서 있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AGI(인공일반지능) 개발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가 될 것이며, 어쩌면 마지막 발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전환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AI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는 스타트업이다. 특히 '소버린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가의 미래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스탠퍼드 인터뷰에서, 구글이 경쟁에서 뒤처진 이유로 '일과 삶의 균형'을 지나치게 중시한 점을 지적했다. 재택근무와 조기 퇴근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직 문화가 바뀌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집중력과 열정이 저하되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매우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지금의 거대언어모델이 이룬 성과는 창발성에 기반한다. 방대한 데이터 학습량이 특정 임계치에 도달하면서 발생한 질적 도약이며, 연구자들조차 그 과정을 완벽히 설명하거나 추적하기 어렵다. 이 비선형적 기술 도약을 다루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집요한 열정이 필요하다. 챗GPT 초기 공개 당시 핵심 개발자 일리야 수츠케버가 후발 개발자들에게 전한 조언도 '믿음이 필요합니다'였다. 자본과 인력도 중요하지만, 리더가 모든 것을 걸고 모험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물리적 키보드를 없애고 터치스크린과 핑거 제스처를 도입했을 때, 그는 다수가 반대하는 무모함을 추구했고 그 열정이 혁신을 만들어냈다. 오픈AI의 샘 알트만 역시 모든 자본을 끌어다 모델의 크기를 키우는 결정적이고 위험한 선택을 이끌었다. 이러한 도전은 구글과 같은 안정된 대기업 구조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진정한 혁신은 기존의 틀을 깨는 무모함을 용인하는 기업 문화에서 가능한 일이다.

2021년 오픈AI 출신 연구자들이 설립한 앤트로픽은 Claude-3.5 Sonnet을 출시하며 눈에 띄는 성능 개선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프로그램 코딩 영역에서는 이미 챗GPT를 능가했다. 모델 성능 비교 사이트의 상위 10위 랭킹에서 앤트로픽과 미스트랄이 오픈AI에 이어 상위권을 차지하는 반면, 구글과 메타는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상위권을 스타트업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30년 전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유사한 상황을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은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트렌드를 파악하고 사업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철수했다.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 '훈민정음'은 한컴의 '아래아한글'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졌다. 대기업의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는 어떠한 모험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거대언어모델 시장 경쟁에서 국내 최대 빅테크 기업인 네이버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와 실적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는 2021년 5월 자체 거대언어모델 1세대를 공개했고, 2023년 8월에는 챗GPT보다 한글 학습 데이터가 6,500배 많다는 메시지와 함께 2세대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선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한글 데이터가 많다는 것만으로 한국 시장을 지킬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거대언어모델의 핵심 경쟁력은 '추론 능력'이며, 이는 학습 데이터의 양과 품질, 학습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하이퍼클로바X 1세대의 파라미터는 GPT-3보다 많은 2,040억 개였지만, 학습 데이터는 1.92TB로 GPT-3의 45TB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 둘째, 거대언어모델은 언어를 구분하기보다 의미 단위(토큰)의 관계를 다룬다. 추론 능력이 뛰어난 모델은 다른 언어 데이터의 추가 학습만으로도 성능을 낼 수 있다.

2023년 8월 24일 하이퍼클로바X는 공개 당일 주가가 4% 급등했다가 다음 날 8% 급락했다. 당시 GPT-3.5와 Bard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성능을 보였고, 특히 추론 능력과 맥락 유지에서 많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네이버는 가장 유력한 국가대표 AI 업체임에 틀림없다. 네이버에게는 두 가지 전략적 수정이 필요하다. 첫째는 글로벌 거대언어모델 경쟁에 과감히 뛰어드는 것이고, 둘째는 스타트업의 민첩성과 혁신성을 도입하는 것이다.

국가 소버린 AI의 필요성과 지향점

'소버린 AI'는 국가 주도로 자체 AI 기술을 확보하자는 패러다임이다.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국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이 시급해졌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기술의 중국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 중국 역시 자국 AI 기업을 적극 지원하며 맞서고 있다. AI 기술은 경제, 안보,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의 미래를 좌우할 게임 체인저다. 외세에 종속되지 않는 자주적 AI 역량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버린 AI는 단순한 기술 주권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근본적 가치와 연결된다. 거대언어모델의 학습 데이터는 해당 국가의 역사, 언어, 문화를 반영하므로, 특정 국가의 데이터로 학습된 AI는 자연스럽게 그 국가의 세계관과 문화적 지향을 내재화한다. 우리의 데이터로 만든 소버린 AI는 삶의 방식과 사유 체계를 포함한 무형의 한국적 가치를 보존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규모 투자와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H100과 같은 고성능 GPU 등 대형 AI 학습 인프라를 갖추는 게 시급하고, 국가 주도로 양질의 한글 데이터를 구축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는 AI 국부펀드 조성도 검토할 만하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선도국과의 격차가 빠르게 벌어질 우려가 크다. EU의 AI ACT나 미국의 AI 규제안은 이미 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소수 강대국이 AI 기술을 과점하는 'AI 카르텔'이 형성될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총력전에 나설 적기다. AI 경쟁에서 뒤처지면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소버린 AI는 불가능한가

거대언어모델 구축은 불가능할까? 단정 짓기엔 이르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의 엑사원, KT 믿음, 카카오브레인 등 자체 모델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앤트로픽과 미스트랄이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구글을 제치고 상위권에 진입했다. 정치권의 의지만 있다면 AI 국부펀드 조성도 가능할 것이다.

30년 전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덕분에 우리나라는 지식정보화시대의 4차 산업을 주도하며 일본을 앞지르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또 한 번의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00년 늦은 산업화로 2류 국가였던 우리가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듯, AI는 1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근래의 딥페이크 문제는 시작일 뿐이다. 뛰어난 성능의 AI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사고 능력을 통해 인간과의 차이점을 뚜렷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AI 리터러시다. 대학에서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여, AI와 인간 상호작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법적, 윤리적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결국 소버린 AI는 국가적 의지와 역량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술, 자본, 인력 등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 거대언어모델에 도전할 때다. AI 주권 확립이 곧 국가주권 수호의 관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 학계 등 각계각층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장기적 비전 아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 리더십도 절실하다. 이제 한국형 AI 모델 개발로 새로운 기적에 도전할 때다.

긴 안목에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