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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AI Literacy

인공지능 시대, 개발자가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며칠 전 한 개발자 후배가 물었다. “교수님, 요즘은 코드를 안 짜요. 프롬프트만 씁니다.” 목소리에 자부심과 불안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후배들을 두고 자조 섞인 신조어를 쓴다. “딸깍이.” 버튼 하나 누르면 코드가 나오는 시대라는 뜻이다.

실제로 2025년 5월 앤트로픽이 주최한 'Build with Claude' 해커톤에서 상위 수상자 5명 중 4명은 전업 개발자가 아니었다(TechCrunch, 2025.5.12). 변호사, 의사, 음악가, 인프라 전문가가 프롬프트로 작동하는 앱을 만들어 현직 엔지니어를 제쳤다. 이 정도면 반가운 소식이어야 한다. 진입장벽이 낮아졌으니,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정작 그 자리에서 밀려난 건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하던 개발자였다. 코딩 실력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감각이 승패를 갈랐다. 만들 수 있다는 것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그렇다면 그 감각은 어디서 오는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 곧 인문학이다.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가 좋은 예다. 창업자 피터 틸은 스탠퍼드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회사의 핵심 설계 원리로 삼은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온톨로지’, 존재론이었다. 의미에 기반한 철학적 질문 위에 세워진 이 플랫폼 덕분에 팔란티어는 군사 정보부터 팬데믹 대응까지 전혀 다른 영역에 동일한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었고, 2025년 시가총액 2,000억 달러를 넘었다. 제품의 철학이 곧 경쟁력이 된 것이다.

흔히 산업혁명을 과학과 기술의 만남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AI 혁명은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이라 불러야 한다. 과거에는 기술이 막히면 과학이 답을 주었다. 지금은 AI가 과학적 돌파구를 이미 열어버렸고, 그 너머에는 인문학적 질문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기술적 진입장벽이 빠르게 평준화되는 지금, 차이는 결국 ‘방향’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방향은 철학이 정한다.

그 방향을 놓쳤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2024년 초 구글 Gemini가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를 생성하면서 인종을 과잉 보정한 사건이 있었다. 다양한 인종을 고르게 보여주려는 안전장치가 역사적 사실보다 기계적으로 앞서면서, 실제로는 백인이었던 나치 독일군까지 흑인으로 그려버렸다. 선의로 만든 장치가 성찰 없이 작동할 때 어떤 왜곡을 낳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GitHub Copilot이 GPL 라이선스 코드를 학습해 생성한 코드 조각은 원본의 저작권을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도구는 이미 전 세계 수백만 개발자의 코드베이스에 스며들었다. 나 역시 이런 도구를 매일 쓰면서, 이 질문을 진지하게 붙들어본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자신이 없다. 철학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그 빈자리는 기술의 관성이 채운다. 그리고 그 관성은 ‘표준’이라는 이름을 얻어 관행이 되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그 대가를 치른다.

기술이 “가능하다”고 말할 때, 인문학은 “왜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인문학은 개발자에게 교양이 아니라 면허에 가깝다.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듯, 개발자에게도 ‘내가 수용한 코드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먼저 묻겠다’는 자기 서약이 필요한 시대다.

이 자격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갖추기 어렵다. 대학과 교육기관이 컴퓨터공학·인공지능학과 커리큘럼 안에 기술 윤리, AI와 사회 같은 인문학 강좌를 필수로 편성해야 하는 이유다. 스탠퍼드의 ‘CS 182: Ethics, Public Policy, and Technological Change’나 하버드의 ‘Embedded EthiCS’처럼, 기술 교육과 인문학적 성찰을 한 교실에서 결합하는 시도가 이미 해외에서는 확산되고 있다. 판교를 중심으로 한 개발자 컨퍼런스에도 ‘인문학 트랙’이 필요하다. 철학자, 사회학자, 법학자와 엔지니어가 같은 무대에서 토론하는 자리 말이다. 자율주행의 트롤리 문제, 생성형 AI의 저작권 경계, 알고리즘 편향의 책임 소재는 개발자만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제이기 때문이다.

개발자에게 인문학을 배우라는 말은 시를 읽고 철학사를 외우라는 뜻이 아니다. 기술에 앞서 인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개발자는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기술을 가졌으면서 성찰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 성찰의 기회를, 강의실과 세미나와 사회적 대화의 자리로 지금 마련해야 한다.

오늘 승인하는 AI의 코드 한 줄이 “모두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개발자의 인문학은 시작된다. 당신은 오늘, 이 질문을 몇 번이나 던졌는가.